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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d 칼럼] 베토벤의 마지막 소나타
  • 김세영 기자
  • 등록 2021-01-08 14:42:33
  • 수정 2021-01-08 16:3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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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아니스트 최윤아의 음악가 이야기]

최윤아 단국대학교 교수, 스포츠닥터스 자문위원


베토벤은 총 32개의 소나타를 남겼다. 음악의 신약성서로 불리는 32개의 소나타 중 가장 마지막 작품인 소나타 32번 op.111은 단 두 개의 악장으로 되어있다. 이 곡을 작곡했을 때 베토벤은 이미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고 그의 말기 작품에 속하는 이 곡은 그의 파란만장했던 인생역정의 마지막 부분을 용해시킨 농도 깊은 걸작이라 할 수 있다. 항간에는 이 곡이 두 악장뿐 인 것이 출판업자의 실수이며 어딘가에 3악장이 있으리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지만 막상 이 곡을 연주해 보면 2악장 후에 다른 어떤 악장이 온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임을 곧 깨닫게 된다.


1악장은 천지를 개벽하는 듯한 광풍으로 시작되어 계속되는 고뇌와 고통 또 불안감 등이 계속 정해진 형식 속에서 전개된다. 마치 삶 속에서 끊임없는 고뇌의 소용돌이, 내면의 치열한 싸움과 항변을 보여주는 듯하다. 반면 2악장은 평화를 노래하는 일명 ‘천상의 노래’라고 일컬어진다. 아름답고 단순한 멜로디 형태로 시작되어 변주곡 형식으로 전개되는데 베토벤은 그가 감당해야 했던 거의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피하지 않고 계속 자신의 소명으로 여기고 따라갔음을 이 작품에서(사실은 그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초월 경지에 이르는 2악장은 진정한 사랑(평화와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헝가리의 음악학자 벤체 사블로치는 이 곡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남겼다고 한다.


“마지막 다섯 개의 소나타들은 각각 미증유의 길이를 자랑하는 동시에 구원과 승천과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중세 시대의 미스터리에 비견할 만한 드라마틱한 플롯으로 가득 차 있다. 이 가운데 세 작품(Op.101, 106, 110)은 푸가토나 푸가와 같은 종결부로 하여금 클라이맥스와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낸다. 반면 다른 두 개의 작품(Op.109, 111)은 하늘로 팽창해 나가는 듯한 확장된 변주곡 형식으로서 찬송가적 절정의 순간을 내포하고 있다. 모든 요소들은 그 자체로 투쟁하고 번민하며 꿈꾸는 한편, 위기를 맞는 과정을 겪으며 이러한 경지에 다다르게 된다.” 



나에게는 베토벤의 마지막 소나타에 대한 조금은 특별한 기억들이 있다.


독일 유학시절 몇 차례 특별히 베토벤의 마지막 소나타를 연주할 수 있는 연주자를 찾는 일이 있었다. 이 곡은 나의 레퍼토리에 들어있는 곡이었기에 그때마다 불려가곤 했었는데 사연인즉 장례식을 마친 후의 추모음악회를 위해 레퍼토리로 베토벤의 마지막 소나타 32번 op.111이 프로그램에 포함되어야 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베토벤의 마지막 소나타의 의미를 알고 있던 독일국민들의 음악 수준이 상당히 높았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은 독일의 한 교회에서 음악회가 열렸는데 음악회에 참석하신 분들은 거의 연세가 있으신 어르신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돌아가신 분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고 추모 음악회 참석자분들의 연세로 미루어 보아 그저 한 노인분이었겠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나는 베토벤의 마지막 소나타를 연주하기 시작했고 베토벤의 마지막 소나타를 이해하기에는 턱없이 어렸던 그때 당시 나의 연주는 아직 여물지 않았으리라고 짐작된다.


열심히 1악장을 지나 2악장에 다다랐고 Var. 4 정도를 지났을까? 나도 모르게 청중과 함께 노래하고 있음을, 아니 내가 청중들의 호흡에 따라 노래해 가고 있음을 깨달았고 형언할 수 없는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때 돌아가신 분을 비록 알지는 못하였지만 하나 하나의 바레이션(Variation)들을 지나면서 순간 그곳에 계신 모든 분들과 베토벤 소나타의 마지막 악장 노래를 통해 돌아가신 분의 삶을 위로하고 따뜻한 대화들로 지나간 날들을 함께하고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모르는 큰 감흥 속에 연주를 마치고 연주회에 온 청중들과 인사를 나누는 가운데 어르신들의 눈에 맺힌 눈물의 의미를 나는 너무나도 정확히 읽을 수 있었고 나도 같은 눈물이 나의 눈에 고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맺힌 눈물 속에서, 너무나 따사한 음악의 교감 속에서 서로에게 미소로 화답하였다.



또 한 번의 인연은 독일 중부지방의 한 저택에서였다. 이곳에서도 어떤 분의 장례식 후 음악회가 열렸고 저번과 같이 베토벤의 마지막 소나타를 연주할 수 있는 피아니스트를 급히 찾아 그곳에 가게 된 것이었다. 나는 그곳에 오신 지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돌아가신 분이 훌륭한 인품과 삶을 사셨던 분임을 알게 되었고 비록 돌아가신 분을 한 번도 뵌 적은 없었지만, 정성과 혼을 다해 연주했다. 연주를 끝내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또 돌아온 후로도 나는 꽤 오랫동안 그 숙연함과 알 수 없는 감흥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과연 베토벤의 마지막 소나타가 아니었다면 이러한 일이 가능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이렇게 베토벤의 마지막 소나타는 학창시절의 나에게 특별한 인연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들은 연주자로서의 소명과 그에 따른 막중한 책임감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하였다. 아마도 그때의 감흥들은 지금까지도 나의 연주철학의 바탕이 되어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베토벤의 위대함. 천상의 노래. 하지만 그 천상의 노래에 다다르기까지의 끊임없는 내면적 갈등과 고통, 그리고 그것을 초월하여 이루어낸 환희는 우리에게 진정한 위로를 준다. 그래서 또 훌륭한 연주자들이 마지막 소나타의 연주가 끝나도 그 감동과 여운으로 말미암아 박수조차 치기 어려운 숙연함을 이 작품을 통해 체험할 수 있다.


코로나로 모두 지치고 힘든 이 시기에 베토벤의 마지막 소나타와 함께 작은 위로의 메시지를 전해 보고자 한다.




글: 최윤아 (현 단국대학교 교수, 스포츠닥터스 자문위원)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 연주학학사, 석사, 최고연주자과정 졸업.

이태리 페스카라, 미국 맥매헌, 영국 하버힐, 스위스 마스터플레이어스 국제콩쿠르 등 우승

독일 괴팅엔 심포니, 체코 프라하 심포니, 헝가리 사바리아 심포니, 영국 하버힐 심포니, 

 KBS교향악단, 유라시안 필하모니, 울산시향, 마산시향 등 협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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